한의사들이 앞으로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은 혈맥약침술(산산약침)을 환자에게 하지 못하게 됐다.
한의사가 산삼을 비롯한 한약재에서 추출한 약물을 주로 암 환자의 혈맥(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혈맥약침술(산삼약침)’에 대해 대법원이 재상고심에서도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인정부터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A요양병원을 운영하는 B한의사는 암으로 입원한 환자에게 혈맥약침 등의 치료를 한 뒤 본인부담금 920만원을 받았고, 2014년 8월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과다본인부담금이라며 환급 처분을 받았다. B한의사는 심사평가원으로부터 과다본인부담금 확인 처분을 받자 심사평가원을 상대로 혈맥약침술은 비급여 항목으로 등재된 약침술의 범위에 된다고 주장하면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사건 1심(서울행정법원)은 “혈맥약침술은 약침술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라며 심사평가원의 과다본인부담금 확인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서울고등법원)은 “혈맥약침술은 시술대상·시술량·시술 부위·원리 및 효능 발생기전에 있어 약침술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으나, 대법원은 혈맥약침술은 약침술과 같거나 유사하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아도 비급여 의료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혈맥약침술과 약침술이 다름에도 원심은 혈맥약침술이 약침술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환자들로부터 본인부담금을 지급받기 위해 신의료기술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원심 판단에는 의료법상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 환송했다.
사실상 혈맥약침술은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으면 환자에게 시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 법원(서울고등법원)도 지난 2월 6일 B한의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B한의사는 파기환송심에서 “혈맥약침술 시술 비용은 본인부담금으로 청구할 수 없더라도, 혈맥약침액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정한 법정 비급여 항목인 ‘한약첩약’에 해당하므로, 그로 인한 비용을 본인부담금으로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혈맥약침액에 해당하는 금액 부분을 과다본인부담금으로 본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 법원 판결의 취지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파기환송 법원은 “혈맥약침술은 기존에 허용된 의료기술인 약침술과 비교할 때 시술의 목적·부위·방법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고, 그 변경의 정도가 경미하지 않으므로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따라서 “B한의사가 환자들로부터 비급여 항목으로 혈맥약침술 비용을 지급받으려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 법원은 약침술과 혈맥약침술의 차이도 판결문에 특별히 기술했다. 파기환송 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약침술은’ 한의학 고유의 침구이론인 경략학설을 근거로 해 침과 한약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한방 의료행위로 치료 경혈 및 체표 반응점에 약 0.1∼수ml 전후로 시술하고, 관련 교과서에서 약침술은 혈관 등을 피해서 주입한다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혈맥약침술’은 산삼 등에서 정제·추출한 약물을 혈맥에 일정량을 주입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며, 산삼약침이라고도 소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의학에서 혈맥은 해부학에서의 동맥이나 정맥, 그리고 모세혈관을 총칭하는 용어로 혼용돼 사용됐으나, 산삼약침에서의 혈맥은 정맥에 국한되며, 혈맥약침술은 고무줄로 상박을 압박해 혈맥을 찾은 뒤 산양삼 증류·추출액을 주입하고 20ml∼60ml를 시술한다고 덧붙였다.
파기환송 법원은 “약침술은 한의학의 핵심 치료기술인 침구요법과 약물요법을 접목해 적은 양의 약물을 경혈 등에 주입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의료기술이므로, 침구요법을 전제로 약물요법을 가미한 것이지만, 혈맥약침술은 침술에 의한 효과가 없거나 매우 미미하고 오로지 약물에 의한 효과가 극대화된 시술”이라며 약침술과 혈맥약침술은 차이가 있다고 봤다.
파기환송 법원은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이 되는 것은 혈맥약침액과 분리된 혈맥약침술 시술 행위만이 아니라, 혈맥약침술 시술 행위에 의해 인체 내로 주입되는 혈맥약침액의 안전성·유효성까지 포함되는 것”이라며 ‘한약첩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혈맥약침술에 관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이 인정된 바 없다는 이유로 혈맥약침술 비용 920만원의 본인부담금 환급을 명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밖에 “B한의사는 파기환송 후 원심 재판에 이르러서야 혈맥약침술로 인한 비용 중 혈맥약침액에 관한 비용은 본인부담금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뒤늦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B한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한의사는 파기환송 법원의 판결에도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 했지만, 대법원은 5월 28일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심절차에관한특례법에 따라 대법원에서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이번 대법원판결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토록 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지켜낸 재판부의 판결에 감사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2014년부터 혈맥약침 소송에 관심을 두고 지속해서 대응해 온 의협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당연한 판결이 나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교웅 한특위 위원장은 “혈맥약침은 현대의학의 정맥 주사나 수액을 투여하는 것과 같은 행위임에도 한의사들은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받지 않은 산삼이나 한약을 절박한 암 환자들에게 투여하며 이윤을 챙겼다”며 “국민의 건강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의료전문가로서 도의적·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한의사들이 전통의학의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고 입증하는 데 주력하지 않고, 수백년 동안 고수해 온 한방 이론을 버린 채 혈맥약침과 체외충격파 치료는 물론 X-ray·초음파·CT·MRI 등 현대의학을 활용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한의학이라는 학문과 한의사 면허를 부정한 채 우리도 현대의학을 배웠으니 의사처럼 쓸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며 국민의 건강을 위협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캐서린 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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