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사용에 제약이 많은 한의원에서 선호하는 기기 중 하나는 초음파다. 복부, 근골격계 등 다양한 질환의 진단에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한의영상학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며 ‘달리자의 초음파와 놀자’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오명진 금강한의원장에게 초음파 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초음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초음파 진단을 처음 접한 계기는 개원을 하던 무렵인 25년 전, 같은 지역에 있는 대학선배들과 초음파 강의를 수강하면서다. 양의사들도 초음파에 대해 생소해하던 시절에 선구자로 앞서 공부한 우정순 선배님을 비롯한 여러 선배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개원을 위한 의료기 구입목록에도 초음파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내가 운영하는 한의원은 시골한의원이라 특성상 상급의료기관이 멀어 검진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많다. 가벼운 증상으로 내원하더라도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감별진단을 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지금까지 초음파에 관심을 놓지 않았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초음파를 활용한 임상례 중 기억에 남는 사례를 이야기 해 달라.
복부 초음파는 단순 복통과 소화불량으로 내원한 환자가 실제로는 심한 병변이 숨어있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초음파로 쉽게 감별할 수 있는 복부 내 악성병변들도 검사 없이는 단순한 소화불량으로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양방병원을 다녀온 환자라도 각종 응급병변 또는 악성병변이 숨어있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최근 한 달 동안에도 80대와 50대 환자가 상복부불쾌감으로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내원 시 초음파 검사 결과 모두 췌장암으로 의심되어 전원 후 확진된 사례가 있다. 이외에도 급성담낭염, 담도결석, 간농양, 요로결석, 충수돌기염 등 겉으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초음파 검사를 통해 감별되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근골격계 초음파의 경우 골절 진단이 장점이라 생각한다. 작거나 숨어있는 골절도 초음파에서는 놓치지 않고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X-ray에서 정상진단을 받은 환자에게서도 초음파에서는 골절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골절의 상태에 따라서는 초음파가 훨씬 높은 진단율을 보인다는 많은 연구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의원 내원 전 두 번의 X-ray 진단에서 정상이라고 들은 환자를 초음파로 진단한 결과 상완골 대결절의 골절이 발견된 사례가 있었다. 다시 정형외과로 전원을 했음에도 정상이라고 듣고 방치하다가 고정만으로 회복될 수 있는 시기를 놓쳐서 3개월 후에 결국 수술을 한 경우도 있다. 골절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전반에 관한 진단이 가능하고, 초음파 가이드를 통해 안전하게 약침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이 초음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혈관을 평가하는 일은 초음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하지 무력과 통증으로 종합병원에서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고 2년 동안 치료를 받던 60대 환자가 있었는데, 혈관성 파행이 의심되어 하지 동맥의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 결과 심한 하지동맥협착을 발견하여 혈관 시술 후 한의학적 치료를 병행하여 회복된 경우가 있다.
▶한의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해오고 있지만 정부와 양의사단체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양의사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보건행정에 갇혀있는 정부의 태도를 바꿀 방법은 여론밖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들려면 한의계 내에서 초음파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초음파를 가르치는 대학, 초음파로 진단하는 대학병원, 초음파를 이용해서 치료하는 한의원이 많아져야 의료기기에 대한 우리의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대학에서는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초음파의 활용도를 연구해야하고, 한의원에서는 초음파가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의 도구임을 국민에게 어필해야 한다. 우리가 외면하는 의료기기를 누가 인정해주고 쓰도록 한단 말인가. 우리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가까이 하는 순간 의료기기에 대한 우리의 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미국 초음파사 자격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취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초음파 강의를 진행하면서 강사의 자질에 대해 고민하다가 곧 초음파 스캔 경험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으로 공인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미국 초음파사 자격을 알게 되었고, 한의 임상에서 중요한 자격을 차례로 도전하다보니 복부(RDMS), 근골격계(RMSK, RMSKS), 혈관(RVT) 자격을 차례로 취득하게 되었다. 초음파 강사라면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검증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근골격계에 대해서는 두 개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미국초음파사협회(ARDMS)는 하나의 기관에서 의사와 의료기사의 자격을 모두 관리하였으나, 2015년부터 의사 직군의 자격을 분리하여 APCA라는 기관에서 따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근골격계의 진단에만 관여하는 의료기사는 RMSKS라는 자격으로, 근골격계의 진단과 치료에 모두 관여하는 의사는 RMSK라는 자격으로 분리하게 되었다. 나는 2016년 RMSK에 응시하려 지원했지만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고 어쩔 수 없이 RMSKS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의료법상 한의사가 의사와 동등한 의료인이라는 점, 한의대와 의대의 교육과정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 OECD 통계에 의사 숫자를 보고할 때 한의사가 포함된다는 점, 한의치료가 국가의료보험에 속해있다는 점, 한의사가 독립적인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는 점, 초음파 가이드를 통한 약침 시술에 대한 연구내용 등을 관련 자료와 함께 수차례 문의하여 한의사가 RMSK 자격에 응시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고 RMSK 시험을 추가로 응시하게 되었다. 현재 한의사는 APCA에서 시행하는 의사 대상 자격시험에 모두 응시할 수 있다.
미국초음파사 자격은 교육의 이수만으로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닌, 시험을 통해 초음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음을 검증받는 과정이다. 따라서 어느 자격보다 공신력이 있고, 전 세계에서 유일한 초음파 진단 자격이다. 초음파 진단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이해하고 임상에 적용할 수 있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까다로운 과정이기도 하다. 자격취득을 한 경우 초음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 자격자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의사 중에는 현재 약 200여 명이 이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와 실습강의를 함께하는 20여 명의 대한한의영상학회 초음파 강사들은 모두 복수분야의 자격자로 구성되어 있다.
▶자격증 취득에 관심이 있는 한의사들에게 공부방법 등에 대해 조언한다면.
초음파는 직접 영상을 만들어 내며 진단까지 겸해야하므로 스캔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한다. 또한 초음파의 특성과 기기 조절 방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고 전반적인 병변에 대한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와 마주해서 검사를 하므로 검사 중에 진단이 완료되어야 환자에게 결과를 설명해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실시간 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특성이다. 그래서 초음파에서 보이는 병변에 대해 폭넓은 사전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초음파 공부를 하면서 더불어 자격시험까지 공부를 하면 초음파 기기를 다루는 능력과 함께 임상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질환에 대한 병리현상과 초음파 소견 등을 자세히 체득할 수 있다. 현재 진행하는 동영상강의에서는 이런 초음파 진단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자격시험에 도전이 가능하도록 시험 준비에 대한 내용도 함께하고 있다. 초음파는 직접 진료에 응용을 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부디 많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에 관심을 가지고 진료에 날개를 달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