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캡슐과 같은 양약 모양으로 만든 ‘천연물신약’ 처방권을 양의사에게만 부여한 현행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가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을 뒤집은 한의사는 처방할 수 없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황병하 부장판사)는 최근 대한한의사협회와 한의사 김모씨 등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상대로 낸 고시무효확인소송의 항소심(2014누2029)에서 1심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방 원리가 아닌 서양의학적 원리에 의해 생약으로 제조된 천연물신약은 한약제제가 아니므로 한의사가 처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어 “설령 허가받은 생약제제가 실제로는 한방원리로 제조된 것이라도 이를 서양의학적 원리로 제조된 것으로 판단해 생약제제로 품목 허가한 처분이 잘못된 것”이라며 “따라서 처분이 잘못됐음을 다투어야 하는 것이지 서양의학적 원리에 의해 제조된 것만을 생약제제라고 규정한 고시규정 자체를 다툴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의사들은 한약을 원료로 만든 천연물신약이 식약청 고시에 따라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양의사만 처방할 수 있고 자신들이 처방할 수 없게 되자 식약처 고시가 무효라며 지난 2012년 12월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식약청 고시는 한방의료행위의 범위를 한정해 한의사 면허 범위는 물론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무효”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의 이같은 판결에 대해 의료계와 한의계는 당연히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한의계, “국민건강 볼모 자본 이익 대변 유감”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이 형평성을 상실했으며 전문가의 소견에 근거하지 않고 제약기업이 양약·한약을 구분해 품목허가를 신청토록 하는 것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 자본의 이익 앞에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았다고 유감을 표명하며 대법원에서 다시 다룰 것을 주장했다.
한의협은 이번 소송과는 별개로 1조4000억이상의 재원이 낭비되고 국민 건강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음이 국정감사와 감사원 결과 보고서 등을 통해 명백히 밝혀진 현재의 천연물신약 정책은 즉각 전면 재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또 천연물신약 정책의 전면 재정비 과정에서 최고 전문가집단으로서 한약제제를 통한 국민건강증진과 한약제제의 세계적인 의약품으로의 발전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의협에 이어 참의료실천연합회는 천연물 신약이 기존 한약서에 기재된 처방에서 용량, 용법등을 조금씩 수정해 만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이 한의학에 대한 양의계의 침탈을 공식화한 부당한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참실련은 시판되는 천연물 신약에서 다량의 벤조피렌등 발암물질이 검출돼 의료계에서도 이를 처방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있으며 최근 감사원에서도 천연물 신약 정책이 엉터리였기에 전면 재검토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고 강조했다.
참실련에 따르면 천연물 신약 문제는 의료계와 한의계가 아닌 제3자인 제약회사가 식약처의 고시를 배경으로 양약으로 탈바꿈할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참실련은 “이번 2심 재판은 식약처-제약회사-양의사라는 전형적인 기득권 단체들의 연합이 천연물신약제도라는, 시민사회와 의료계뿐만 아니라 정부내에서조차도 수많은 비판을 받아온 전형적인 기형적 산물조차 합법화 될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비난했다.
◆의료계, 고법 판결 환영…”한약제제·생약제제 달라”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유용상)는 지난 24일 “천연물신약을 현대의학적 원리에 따른 생약제제로 규정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명확히 구분한 판결”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한특위에 따르면 천연물신약의 범위와 개발원리가 현대의학에 기초를 두고 식약처의 임상시험 등 기준을 통과한 의약품으로 정의하고 한약제제를 생약제제(천연물신약)로 불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특위는 “이번 판결은 의약품 개발에 기본이 되는 학문적 기초를 근거로 개발 원리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의약품 제제·기준뿐 아니라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범주를 법적으로 다시 한 번 명확히 구분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유용상 위원장은 “한의협은 소모적인 논란을 더 이상 자초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한의학적 이론과 치료술의 객관성 검증에 냉철한 과학 이성적 자세를 도입하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이번 고법의 판결이 현대의학의 원리와 한의학의 원리가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등 불필요한 논란을 중단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메디컬 한의 기사제휴지 e-헬스통신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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