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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5, 2024

김한직 교수의 361혈 궁리

△《내경》, 《상한론》, 《금궤요략》, 《온병학》 등 고전에 충실하면, 오히려 미국 환자들을 보는 데에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 현지인들은 후세방보다 고방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

 

한의대에서 25년 정도 강의를 해오면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나는 미국의 한의사다’, 두 번째는 ‘고전으로 돌아가라’ 등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고 너무 당연하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이 두 가지를 실천한 사람은 조용하게 자신의 클리닉에서 내실을 기하면서 성공적으로 한의사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미국 한의사

2014년부터 오바마 케어가 시작됐다. 특히 가주에서는 한의치료가 정식 의료체계에 속하게 됐고 이전보다 많은 미국 환자들이 한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 등 좋은 환경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 커뮤니티 한의사들이 영어권 환자보다는 한국어권 환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미국 한의사’라면, 현지 영어권 환자들을 봐야 한다. 물론 미국 현지인 환자를 보는 게 쉽지는 않다. 영어를 습득해 미국인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노하우를 간과하면 안 된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이민 온 사람보다 영어실력은 떨어져도, 연륜을 최대한 활용하면 진심을 통하게 할 수 있다.

아직 영어가 편하지 않다고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현지인 환자를 대할 때 간단한 한의학 한자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하면 몰입도가 훨씬 더 강해진다.

예를 들어 정(精), 기(氣), 신(神) 등 글자를 보여주고 인체 생리를 설명한다든지, 감기나 알레르기에 자주 걸리는 사람들에게 ‘동불장정 충필병온(冬不藏精 春必病溫; 겨울에 정을 저장하지 않으면 봄에는 반드시 온병에 걸릴 것)’이란 말을 쓰거나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의외로 효과가 크다.

이 문구는 특히 겨울에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하거나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에게 설명할 때 유용하다.

‘온병’이란 현대적 의미로 감기, 알레르기 등을 말한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에 정이 튼튼해야 기혈도 충분해지고 외감병사에 저항력이 생긴다. 겨울은 오행상 저장하는 계절이다. 겨울에 살을 뺀다든지 안 먹는 것은 천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기와 함께 사기도 같이 성행하는 봄에 병이 생기기 쉬워진다고 설명하면 미국 현지인들도 한의사의 설명에 몰입도가 달라진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영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환자에게 한의학에 대해 설명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고전으로 돌아가라

《내경》, 《상한론》, 《금궤요략》, 《온병학》 등 고전으로 돌아가자. 그러려면 한자가 중요하다. 중국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한의학 교재를 써 잘 알려진 지오바니와 테드 캡첩(Ted Kaptchuk)은 한자로 된 책을 읽고 바로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

이들 모두 중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중국어 공부를 해서 한자를 보고 고전의학 서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테드 캡첩이 저술한 한의학 서적은 얼마 전까지 가주한의사위원회(CAB)의 공식 교과서로 채택돼 사용했으며, 지오바니의 한의 서적은 아직 공식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같은 미국 한의사라도 한의학 고전을 직접 읽고 바로 해석해 강의할 수 있는 사람만이 더욱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많은 부분이 한자와 연관돼 있어 이들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중국어 원서를 읽을 수 있다. 중국어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한자로 된 서적만 읽으면 된다.

고방을 공부하면 유리한 것이 또 있다. 침(鍼), 구(灸), 약(藥) 등 3대 치료 수단 중 미국에서 침구는 보편적이지만, 약은 아니다.

그러나 후세방보다 고방을 사용하면 미국 현지 환자들에게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고방은 처방구성이 간단하고 끓였을 때 보리차 같은 경청한 기미의 탕약이지만, 후세방은 기미가 중후해 냄새도 강하고 소화에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당연히 미국 현지인에게 후세방을 처방했을 때 저항이 더 크다. 또한 현지 환자들은 고방이 차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복용을 더욱 선호하며, 효과 역시 고방이 훨씬 유리하다.

 

서두르지 말라

학생이나 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안 되는 한의사와 이야기 하다 보면,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한의학은 옛 것을 모방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때문에 그 과정이 단축될 수도, 한정 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본 고방 대가인 대총경절(大塚敬節)이 쓴 《한방의학》을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 분도 임상을 고방에 의거해 《상한론》과 《금궤요략》을 외우는 데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그가 외운 조문에 의거, 해당 증상 환자에게 탕을 줘 보는 오랜 과정을 거쳐 결국 조문과 병증에 맞는 처방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장수시대다. 만학이어도 반세기는 임상할 정도로 살 수 있다. 때문에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비전을 갖고 묵묵히 한길을 가야 한다. 물론 원론적이고 답답한 말이다. 하지만 이를 참고 견뎌야 비로소 온전한 한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한직 교수(사우스베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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