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기억은 뇌 전체에 걸쳐 극히 적은 수의 뉴런들에 인코딩되고 저장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뉴런들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원리에 의해 선택되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신경과학의 미해결 난제인 기억 형성에 대한 규명은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할뿐만 아니라, 치매 치료의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한진희 KAIST 생명과학과 교수팀(제1저자 정이레 연구원)은 13일 무수히 많은 뉴런과 이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된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에서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선택되는 근본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6월 24일자에 ‘Synaptic plasticity-dependent competition rule influences memory formation’ 제목으로 게재됐다. 70여년 전 캐나다 신경심리학자 도널드 올딩 헤브(Donald O. Hebb)는 저서 <행동의 조직화>(The Organization of Behavior·1949)에서 두 뉴런이 시간상으로 동시에 활성화되면 이 두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이 강화된다는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후 실험을 통해 학습으로 특정 시냅스에서 실제로 ‘장기 강화'(long-term potentiation·LTP)가 일어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후 LTP가 기억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인식돼 왔지만, LTP가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한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뉴런 선택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생쥐 뇌 편도체(amygdala) 부위에 자연적인 학습 조건에서는 LTP가 발생하지 않는 시냅스를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 특정 패턴으로 자극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시냅스 연결을 강하게 만들거나 혹은 약하게 조작하고 이때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연구팀은 먼저 생쥐가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기 전 시냅스를 미리 자극해 LTP가 일어나게 했을 때, 원래는 기억과 상관없던 이 시냅스에 기억이 인코딩되고 LTP가 일어난 뉴런이 주변 다른 뉴런에 비해 매우 높은 확률로 선택적으로 기억 인코딩에 참여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학습 직후 이 시냅스를 다시 광유전학 기술로 인위적으로 자극해 시냅스 연결을 약하게 했을 때는 시냅스와 뉴런에 기억이 인코딩되지 않는 결과를 얻었다.
이어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생쥐가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고 난 직후에 LTP 자극을 통해 시냅스 연결을 인위적으로 강하게 했을 때 반응을 살폈다. 연구팀은 LTP를 조작한 시냅스에 공포 기억이 인코딩되고 주변 다른 뉴런들에 비해 LTP를 발생시킨 뉴런에 선택적으로 인코딩됨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는 시냅스 강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을 때 기억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기억을 인코딩하는 뉴런이 변경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진희 교수는 “LTP에 의해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 패턴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경험과 연관된 특이적 세포 집합체(cell assembly)가 뇌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며 “이렇게 강하게 서로 연결된 뉴런들의 형성이 뇌에서 기억이 형성되는 원리임을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