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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5, 2024

종합컬럼 – 한 논문 열 저자, 의학논문은 왜 그럴까?

인문학 논문은 특성상 두툼한 단행본 책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대개 한 명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의학 논문은 짤막해도 저자가 여러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화제가 된 간단한 논문의 저자는 모두 10명이었다. 결국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던 우리나라 연구팀이 2004년 ‘사이언스’에 출판했던 줄기세포 관련 논문의 저자는 15명으로, 그리고 그 한 해 뒤 발표한 두 번째 논문의 저자는 무려 25명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의학 논문은 산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이런 다 저자 논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학연구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운동 경기에 비유한다면 의학연구는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이다. 간단하게 가설을 세워 시험을 하는 경우에도, 연구자 A가 가설을 세워 연구를 계획하면 B·C·D에게 환자 자료와 검체 수집을 부탁하고, E·F에게는 자료의 취합과 검체의 분석을, G에게는 통계 분석을 맡기는 식의 분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분업에 확실히 기여한 사람들이 공동저자에 포함이 되는 것이다. ‘국제 의학학술지 편집자 위원회’는 저자의 자격을 ① 연구 계획의 수립, 자료 수집 및 분석에 충분히 기여했고 ② 논문 원고를 직접 쓰거나 원고를 검토하고 개선했으며 ③ 최종 원고를 검토한 후 투고를 허락하고 ④ 논문의 정확성과 진실성에 책임을 지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로 정해두고 있다.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연국 논문의 공동 저자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논문의 가장 중요한 저자는 역시 저자 명단의 가장 앞에 나오는 제1 저자와 대개 가장 뒤에 자리 잡는 책임 저자다. 제1 저자는 연구 과정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맡으며 초고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임 저자는 연구를 기획하고 진행한 책임자라는 뜻이며, 독자가 논문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저자라는 뜻으로 교신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적인 면역학분약 권위자로 ‘위험 모델’을 제창했던 폴리 매칭거 박사는 자신의 논문과 관련된 마냥 웃지만은 못 할 일화가 있다. 플레이보이 클럽에서 바니걸로 일하기도 했던 그녀는 술집 웨이트리스, 재즈 뮤지션, 목수, 개 조련사 등의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 그녀가 일하던 바의 단골 손님이었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로버트 슈왑 교수의 눈에 들면서 그녀의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이 웨이트리스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눈여겨본 슈왑 교수는 대학 졸업장도 없었던 그녀에게 과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을 권유하고, 결국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본격적인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 여기서 문제는 그녀가 1978년에 ‘실험의학저널’이라는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의 저자 목록에 있다.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던 이 논문은 엉뚱하게 저자와 관련하여 구설에 오르게 되는데, 논문의 저자는 의학 논문치고는 이례적으로 단 두 명이었다. 매칭거 박사와 ‘글라드리엘 머크우드’라는 연구자였다. 문제는 이 두 번째 저자의 정체가 묘연했고 매칭거 박사가 일하던 대학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어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결국 밝혀진 두 번째 저자의 정체는 매칭거 박사가 키우던 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을 알게 된 ‘실험의학저널’의 편집장은 분노와 질타를 내보였지만, 그녀가 이런 허무맹랑한 일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호사가들이 추측하기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녀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문장을 요구하던 의학술지들의 관행을 비꼬우기 위해서이거나, 논문을 작성하면서 관행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공동저자로 들어가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의도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의학논문의 관행을 꼬집는데는 효과적이였고, 의학논문이라고 할 지라도 공동저자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라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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